계요등
서울 종묘의 담장 위에서
여름이면
땅으로 땅으로
길게 목을 늘이는
계요등
지금 한창 꽃 피우고 있겠지
가장 낮은 곳을 향해 팔을 벌리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눈웃음 짓는
바짝 다가가지 않는 사랑법을
가르쳐준 너
오늘도 사랑의 세레나데를 위해
클라리넷을 불고 있겠지
병들어 찾아온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는
낯선 고향에서
시름겨운 한숨소리 뱉을 때마다
나직이 들려주던 너의 속삭임이 그립다
더는 견딜 수 없는 야멸찬 고향 바람
고통의 바다를 자맥질하다가 겨우 잠드는
깊은 이불 속이 유일한 행복인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
이제 네게로 가련다
가슴 울려주던 클라리넷 선율 멈추고
둥그런 열매마저도 떨어져
누렇게 찌그러진 얼굴이어도
아픔 서로 달래며
너와 마주하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고 싶구나
김승기
어둑어둑해져서 사진으론 못찍고 내려봤는데..여기서 보니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