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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2007.03.05 21:46 조회 수 : 1604

버들은 물을 좋아하여 개울이나 호숫가에 터를 잡는다.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꽃들이 얼굴치장으로 여념이 없을 때 버들은 간단히 물세수하고 가느다란 몸매하나로 승부수를 던진다.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늘어진 버들가지는 이리 저리 산들바람에 실려 몸을 비튼다. 관심을 끌려는 독특한 몸짓이다. 부드러움과 연약함에 사람들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가냘픈 여인을 상상해서다. 자연스레 버들과 여인의 신체특징을 비교한 여러 말이 생겼다. 여인의 가느다란 허리를 유요(柳腰), 예쁜 눈썹을 유미(柳眉), 빼어난 자태를 유태(柳態)라는 것이 대표적 예다. 평양을 유경(柳京)이라고도 하였다. 대동강을 따라 버들을 많이 자라기도 하였으나 색향이란 이미지가 더 강하다.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주몽의 어머니는 버들에 얽힌 사랑으로 영웅을 잉태한다. 그녀는 버들 꽃 부인, 바로 유화부인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보면, 물의 신 하백(河伯)의 장녀였던 유화는 두 동생들과 함께 압록강 가에서 놀았다. 평소에는 둔치로 있다가 장마 때면 물이 차는 곳, 여기에는 갯버들이란 버들이 잘 자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버들강아지다. 딸을 귀여워한 하백은 예쁜 갯버들의 꽃을 보고 유화(柳花)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어느 날 그녀는 하느님의 아들이라 자칭하는 해모수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바람둥이 해모수는 얼마 뒤 홀로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는 그만이었다. 바람난 딸에 화가 난 하백은 유화를 추방해버린다. 마침 동부여의 금와왕이 유화를 발견하고 왕궁으로 데려갔더니 알 하나를 낳았다. 이 알에서 나온 아이가 뒷날 주몽이 된다. 시대를 한참 뒤로하여 고려의 태조 왕건은 유(柳)씨 성을 가진 신혜왕후를 버드나무 밑에서 만난다. 왕건이 궁예를 쫓아내는 거사를 망설일 때 갑옷을 입혀주면서 용기를 북돋아 준다. 버들과 유난히 인연이 많은 그녀지만 버들허리를 가진 연약한 여인이 아니라 나라의 임금을 갈아 치운 대단한 여장부이었다.


이렇게 권력의 언저리를 함께한 버들은 조선에 들어와서는 남녀의 사랑으로 승화된다. 조선중기의 문신 최경창과 관기(官妓) 홍랑의 사랑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닫는다. 그는 북도평사라는 벼슬로 함경도 경성에 있을 때 둘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남의 사랑을 들여다보는 입장에서는 이별이 있어야 감칠맛이 있 법, 오래지 않아 최경창은 임기가 되어 한양으로 떠난다. 관에 매인 몸이라 따라 나설 수 없었던 홍랑은 그를 배웅하고 이슬비 내리는 저문 날, 버들가지를 꺾어 주면서 시 한수를 건넌다. ‘산 버들가지 골라 꺾어 님 에게 드리오니/주무시는 창가에 심어두고 보옵소서/밤비 내릴 때 새 잎이라도 나거든 날 본 듯 여기소서‘ 버들가지 하나를 두고 신분을 초월한 연인사이의 안타까운 이별이 절절히 베어있다. 옛 사람들이 연인과 헤어질 때 배웅을 할 수 있는 마지막은 나루터가 되는 경우가 많다. 헤어짐의 마지막 순간 가시는 님에게 물가에 흔히 자라는 버들가지를 꺾어주는 것으로 아픔을 가슴에 묻는다. 이렇게 이별의 징표로 버들을 건너 주는 데는 숨겨진 또 다른 뜻이 있었다 한다. “빨리 돌아오세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처럼 내 마음은 나도 몰라요.”라는 은근한 투정이 배어있어서다.


버들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도 이어진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괴로울 때 구원을 청하면 자비로써 사람들을 구해 준다. 그래서 흔히 옛 탱화는 관음도가 잘 그려지는데, 양류관음도와 수월관음도가 대표적이다. 모두 관세음보살이 버들가지를 들고 있거나 병에다 꽃아 두고 있는 형식이다. 이는 버들가지가 실바람에 나부끼듯이, 미천한 중생의 작은 소원도 귀 기울여 듣는 보살의 자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아울러서 버들가지가 꽂혀 있는 관세음보살의 물병 속에 든 감로수는 고통 받는 중생에게 뿌려주기도 한다. 버들의 뿌리는 감로수를 깨끗이 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다.


그러나 버들에 꽃이 섞인 ‘화류(花柳)’는 뜻이 달라진다. 순수하고 애틋한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조금은 육감적이거나 퇴폐적이 된다. <춘향전>을 보면, 봄바람에 글공부가 싫어진 이몽룡이 광한루로 바람 쐬러 나간다. 성춘향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그려져 있다. ‘저 건너 화류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 하는 게 무엇인고?. 자세히 보고오너라!’고 방자를 재촉한다. 역시 봄바람이 잔뜩 들어간 성춘향도 그네를 타고 있었으니 둘의 만남은 다분히 의도적인지 모른다. 늘어진 버드나무에 그네를 매고 복사꽃 오얏 꽃을 배경으로 치맛자락을 펄럭이었으니 숫총각 이몽룡으로서야 정신이 ‘몽롱’해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몸을 파는 여인을 두고 노류장화(路柳墻花)라고도 한다. 길가에서나 흔히 만나는 버들이나 담 밑에서 핀 꽃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빗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울려 노는 곳은 아예 화류계라 하였다. 역시 꽃과 버들이 섞인 탓이다. 봄날이 가기 전 다소곳이 늘어트린 가녀린 버들가지를 만져보면서 우리 곁에 살아온 긴긴 세월 동안의 여러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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