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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콩 2019.07.21 07:50 조회 수 : 89

새벽에 잠에서 깼습니다.
산행을 계획하고 있어서인지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밥을 물에 말아 마시듯이 먹고 길 위에서 먹을 물과 과일
그리고 과자를 챙겨서 살그머니 나섭니다.
이른 아침이라 차가 많지 않은 길을 편하게 달립니다.
앞서 가는 차가 멀어져도 조바심 내지 않기로 합니다.
산에서도 천천히 걸으려고 하는데 마음까지 느긋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등산로 입구입니다.
만물상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가파릅니다.
이 길은 1972년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닫혔다가
지난 2010년부터 다시 열렸다고 합니다.
길은 잘 다듬어져 오르는데 불편함이 없으나
가파르다 보니 한발 한발 고도를 높여가는 일이 여간 아닙니다.

몇 번이나 숨을 고른 후에 시야가 트이는 중턱에 올랐습니다.
나비 몇 마리가 이리저리 날고 있습니다.
서로 몸이나 날개로 부딪치며 거칠게 날기도 합니다.
나비 한 마리가 막 올라온 제게 날아듭니다.
땀에 밴 염분을 섭취하려나하고 가만히 있었으나
제 기대와는 달리 데면데면합니다.
환영이 아니었습니다.

점유행동을 하는 모양입니다.
점유행동은 호랑나비와 같이 몸집이 크고 빨리 나는 나비에게서 주로 나타나며
몸집이 작은 부전나비 무리의 일부 종까지 많은 나비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 먹이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니,
생존과 번식을 위한 투쟁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시야가 확보된 곳이나 산 정상부, 먹이식물 주변에서 주로 한답니다.
더러 날개가 많이 훼손된 나비를 보게 되는데요.
점유행동으로 인한 상처이기도 하며
나뭇잎 등 어디에 부딪히거나
새 같은 포식자의 공격으로도 날개가 손상된다고 합니다.
나비만을 대상이 아니라 새들도 간혹 점유행동의 대상이 된다고 하니
좀 전에 내게 왔던 나비도 영역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한 건 아닐까요?

매력적인 나비가 눈에 띕니다.
앞날개와 뒷날개 모두 윗면이 청록색으로 햇볕을 받아
진주처럼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데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매번 같은 나뭇잎에 앉기는 하는데 틈을 주지 않습니다.
사진 찍으러 다가서는 저를 경계하고,
다른 나비들도 몰아내야하니 모델이 되어줄 여유가 없나 봅니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 한 번은 허락해주네요.
날개를 편 상태로 사진에 담았습니다.
정확히 동정하려면 날개를 접은 상태로 날개 아랫면을 보아야하는데
거기까지는 아닌 가 봅니다.
집에 와서 도감으로 맞추어 보니 오늘 본 나비는 녹색부전나비 종류입니다.
남방부전나비나 암먹부전나비와 같이 주변에서 흔히 보는 부전나비는
앉아 있을 때 대부분 날개를 접고 있는데 이 녀석을 반대입니다.
왜 그럴까요?

만물상능선은 말 그대로 여러 형상을 한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바위는 모난데 없이 둥그스름하고
서로 몸을 기대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안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위를 따라 길은 나있습니다.
걷는 이의 마음이 편합니다.
바위가 서있는 곳까지 구름이 낮게 내려와 있어서
산 아래 멀리서 보면 구름 속을 걷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습니다.
정작 여기서는 구름에 가려서 먼 경치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이 큽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풀과 나무들에도 눈길이 갑니다.
금마타리, 미역줄나무와 쇠물푸레나무는
꽃으로는 볼 수 없었고 씨앗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서성재에 이르니 쉬어갈 정도의 공간이 있고
무너져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성벽 일부도 보입니다.
대가야 시대에 축성되었고 위급할 때
왕이 피신하는 용도로도 여겨진다는 안내문을 읽습니다.
조릿대 사이로 난 걷기 편한 길이 끝나고
군데군데 바위사이로 난 철 계단길이 나옵니다.
난간을 잡고 손의 힘까지 보태 올라갑니다.

난간 너머로 기대치 않았던 흰참꽃나무 꽃을 봅니다.
절정기를 한참이나 지났지만 이 꽃을 보기 위해 6월경에 찾아오려했으니
만나는 기쁨이 큽니다.
진달래과에 속하고 참꽃이 진달래를 의미한다고 하나,
꽃은 옥수수 튀밥의 속살처럼 퍼져있어
흔히 보는 진달래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고 꼬리진달래와 더 비슷합니다.
가지에 모여 나는 작은 잎은 흰털이 밀생하여
이른 봄에 보는 노루귀를 연상시킵니다.
돌양지꽃, 자주꿩의다리, 산꿩의다리, 노루오줌, 며느리밥풀 같은
여름 꽃이 있어 가파른 오름 길에서 힘이 되어줍니다.

칠불봉입니다.
오늘은 구름이 내려 앉아 있어 시원스런 조망이 아쉽지만
구름 사이로 간혹 보이는 먼 경치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칠불봉에서 상왕봉까지 200m 남짓한 능선과 그 주변은 식물군이 다양합니다.
긴산꼬리풀, 바위채송화, 기린초, 물레나물, 산쥐손이, 회목나무,
조록싸리, 피나무, 산수국, 미역줄나무는 꽃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자주꿩의다리는 바위와 어울려 감동적인 광경이 됩니다.

오늘 여기서 보려고 했던 백리향과 솔나리는 아직 꽃봉오리 상태였고
그나마 많은 개체도 볼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했던 네귀쓴풀도 끝내 제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을 기약해야겠지요.

식물은 온도나 낮과 밤의 길이 변화 등 자신에 맞는 적당한 시기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사귀를 떨궈 냅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거지요.
아주 옛날에는 인간도 자연의 시간에 따라 살았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만든 시계에 맞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계가 발명된 이후에는 편하게 시간을 재고 알 수 있으니
자연의 변화를 알아채는 감각은 무뎌졌을 겁니다.
그러니 시계에 맞춰 사는 우리는 꽃이 피는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꽃을 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주 찾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대로 가만히 놓아두고 간섭하지 않는 겁니다.
쉬우면서도 어렵고, 알면서 잘 지키지 못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 방울씩 내리던 비가 굵어지고 잦아지기 시작하니
아쉽지만 하산을 해야 합니다.
늦은 오후에 예보된 비라 예상은 했으나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내립니다.
서성재부터는 소나기로 변하니 급해진 마음에 걸음이 빨라집니다.
천천히 내려와야 할 길을 그러지 못한 후유증이
무릎의 통증으로 남아 며칠 동안 이어집니다.
7월말에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려 작정하고 있는데 지장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재미없고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나 꽃길에서 행복하십시요.